백리향과 보드라움 난 오래된 믿음을 언제든 벗어버릴 수 있는 외투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그 믿음이 내 이해를 한참 넘어서는 방식으로 날 오염시켰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믿음은 내 몸 깊숙이 스며들어 피부 밑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에서 여정을 시작했을 때 나는 최선의 의도를 갖고 길을 떠났다. 고대인들을 더 잘 이해해보고자 했고, 더 알고 성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난 무기를 잔뜩 챙겼다. 칼과 활, 단검까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싶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특히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니까.
멀리서 고대인의 모습을 보고 완드를 세게 쥐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내가 고대인을 육안으로 확인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고대인은 계곡의 풀밭에서 일어나더니 갑자기 지는 해를 마주 보고 우뚝 섰다. 그러더니 다시 몸을 숙였다. 고대인은 백리향을 채취하고 있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완드를 쥐었던 손에 힘이 풀리면서 수치심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본능이 또다시 나를 배신했던 것이다.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존재가 마치 인간이었던 것처럼 익숙하게 들려오는 멜로디에 귀를 기울이면서... 정말 인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보다 더 인간적이었을지도.
지금부터 무기도, 공포도 없이 새로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전진할 것이다. 음이탈이 되기도, 숨이 턱 막힐 때도 있지만... 날 좀먹는 노래는 아니다. 그럼에도 지독한 기침이 목에서부터 끓어오른다.
다리야 |